영화 멜랑콜리아 속 담긴 공학, 의학, 법학
〈멜랑콜리아〉는 흔히 ‘우울증에 대한 영화’ 혹은 ‘행성 충돌로 인한 종말 영화’로 분류되지만, 이러한 설명은 영화의 표면만을 스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세계를 이해하고 통제하기 위해 구축해 온 시스템들이 극한 상황에서 어떻게 무력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일종의 문명 보고서에 가깝다. 영화 속에서 다가오는 행성 ‘멜랑콜리아’는 단순한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 기술, 제도가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 지점을 가시화하는 장치다. 이때 공학, 의학, 법은 인간 사회가 불안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낸 대표적인 장치로 등장한다. 영화의 전반부는 결혼식이라는 사회적 제도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질서와 축복, 계약과 규범이 응축된 이 공간에서 이미 균열은 발생한다. 주인공 저스틴은 그 모든 절차 속에서 기능하지 못하고, 언..
2025. 12. 30.
영화 인사이드 아웃 행복학, 심리학, 물리학
〈인사이드 아웃〉은 어린이를 위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외형과 달리, 인간 정신을 다룬 매우 정교한 사고 실험에 가깝다. 영화는 한 소녀의 머릿속을 무대 삼아 기쁨, 슬픔, 분노, 공포, 혐오라는 다섯 가지 감정을 의인화하지만, 이 설정은 단순한 캐릭터 장치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왜 행복을 갈망하면서도 동시에 불행을 피할 수 없는지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구조적 모델이다. 영화는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직접 던지기보다, 감정들이 충돌하고 협력하는 과정을 통해 그 정의를 서서히 드러낸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행복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에 있다. 주인공 라일리가 느끼는 감정의 혼란은 단지 이사라는 사건 때문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정체성의 재편 때문이다. 심..
2025. 12. 30.
영화 아무르 등장인물, 줄거리, 철학
〈아무르〉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용한 영화다. 음악도 거의 없고, 카메라는 감정을 과장하지 않으며, 사건은 일상 속에서 서서히 진행된다. 그러나 이 침묵과 절제는 관객을 편안하게 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오래 머물게 하기 위한 전략에 가깝다. 이 영화는 사랑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도, 고통을 극적으로 소비하지도 않는다. 대신 노년의 삶, 돌봄의 현실, 죽음을 앞둔 인간의 존엄이라는 불편한 주제를 정면으로 응시한다. 〈아무르〉가 다루는 사랑은 흔히 영화에서 기대하는 감정의 폭발이나 희생의 미화와는 거리가 멀다. 여기서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책임이며, 선택이 아니라 지속이다. 조르주와 안느는 오랜 세월 함께 살아온 부부이지만, 영화는 그들의 과거를 거의 설명하지 않는다. 관객은..
2025. 12.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