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카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 히든(Hidden, 2005)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로 분류되기에는 지나치게 불편하고, 심리극으로만 보기에는 지나치게 정치적인 작품이다. 이 영화는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한 정체불명의 비디오테이프를 계기로, 프랑스 중산층 지식인의 일상이 서서히 균열되는 과정을 따라간다. 그러나 히든의 핵심은 “누가 보냈는가”라는 범죄적 호기심이 아니라, “왜 우리는 보지 않으려 하는가”라는 윤리적 질문에 있다. 하네케는 관객을 안락한 해석의 자리에서 끌어내려, 프랑스 사회가 집단적으로 은폐해 온 기억과 책임의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든다. 특히 이 영화는 개인의 죄책감, 식민지 역사, 미디어의 시선, 그리고 노동과 계급의 세계가 어떻게 교차하는지를 매우 냉정하고 절제된 방식으로 드러낸다. 이 글에서는 히든의 줄거리, 영화가 구축한 ‘작품세계’, 그리고 주요 인물들을 중심으로 작품을 분석하며, 하네케 특유의 윤리적 영화 언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감시와 침묵으로 구성된 히든의 줄거리
히든의 플롯은 극적인 사건보다는 반복과 정체를 통해 불안을 증폭시키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주인공 조르주는 텔레비전 문학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사회적으로 성공한 중산층 지식인이다. 어느 날 그의 집 앞을 장시간 촬영한 비디오테이프와 의미를 알 수 없는 그림이 배달되면서, 조르주의 일상은 미묘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영화는 이 테이프의 발신자를 추적하는 과정을 따라가지만, 전통적인 미스터리 영화처럼 단서를 제공하거나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네케는 플롯의 진행을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며, 관객이 조르주의 기억 속 과거로 천천히 침잠하도록 유도한다. 알제리계 소년 마지드와 관련된 어린 시절의 사건은 명확한 설명 없이 암시적으로 제시되며, 이 모호함 자체가 영화의 핵심 장치로 기능한다. 히든의 플롯은 결국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주인공이 끝내 직면하지 못한 진실과 그로 인한 윤리적 실패를 드러내는 구조를 가진다. 이는 서사적 만족을 거부하는 하네케의 영화관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작품세계가 만들어내는 은폐의 구조
히든에서 ‘일의 세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은폐와 권력의 구조를 상징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조르주의 직업은 텔레비전 문화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그는 타인의 이야기를 큐레이션하고 해석하는 위치에 서 있다. 이 직업적 위치는 그가 현실의 폭력과 역사적 책임으로부터 한 발짝 떨어져 있을 수 있게 해준다. 조르주의 노동은 육체적이지 않으며, 정돈된 스튜디오와 세련된 언어로 구성된 공간에서 이루어진다. 반면 마지드가 속한 세계는 노동의 현장조차 명확히 제시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투명인간에 가까운 위치에 놓여 있다. 하네케는 이 대비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계급 구조와 식민지 역사 이후의 불균형을 드러낸다. 히든에서 일은 생존의 수단이자 동시에 기억을 지우는 장치로 기능한다. 조르주는 바쁜 일정과 직업적 성공을 통해 과거를 망각할 수 있지만, 그 망각은 결국 비디오테이프라는 형태로 되돌아온다. 이 영화는 노동의 세계가 어떻게 도덕적 책임을 유예시키는지를 집요하게 묻는다.
조르주와 마지드, 그리고 주요인물
히든의 인물들은 모두 말보다 침묵으로 정의된다. 주인공 조르주는 끝없이 변명하고 합리화하지만, 정작 자신의 책임을 명확히 언어화하지는 못한다. 그는 위협받는 피해자의 위치에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점차 관객은 그가 과거의 가해자였을 가능성과 마주하게 된다. 반면 마지드는 영화 내내 수동적이고 침묵하는 존재로 남아 있다. 그는 자신의 고통을 설명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침묵을 통해 조르주의 불안을 증폭시킨다. 하네케는 이 두 인물을 통해 말하는 자와 말할 수 없는 자, 기록하는 자와 기록되지 않는 자의 관계를 그린다. 조르주의 아내 안나 역시 중요한 인물이다. 그녀는 가정과 노동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려 하지만, 남편의 비밀 앞에서는 끝내 주변부로 밀려난다. 히든의 인물들은 모두 불완전하며, 그 불완전함 속에서 관객은 명확한 도덕적 판단을 유보당한다. 이 영화가 오래도록 해석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바로 이 인물들이 특정한 메시지보다 질문으로 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