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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피쉬 탱크 양자역학, 수산학, 공학

by inf3222 2026. 1. 6.

영화 피쉬 탱크 양자역학, 수산학, 공학
영화 피쉬 탱크 양자역학, 수산학, 공학

 

안드레아 아놀드의 영화 **〈피시 탱크〉**는 성장 영화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 자체가 어떻게 제한되고 왜곡되는지를 보여주는 정교한 관찰 보고서에 가깝다. 주인공 미아가 살아가는 공간은 물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극도로 제한되어 있으며, 그녀의 삶은 마치 작은 어항 속에서 반복적으로 충돌하는 입자처럼 보인다. 이 영화는 명시적으로 과학을 언급하지 않지만, 그 구조와 리듬은 놀라울 정도로 양자역학적 세계관과 닮아 있다. 동시에 영화가 배경으로 삼는 영국의 하층 계급 주거 환경은 현대 수산업의 관리 시스템처럼 인간을 자원 단위로 다루는 사회 구조를 연상시킨다. 더 나아가 이 세계를 유지하는 보이지 않는 힘들은 사회공학적·토목공학적 설계의 결과이기도 하다. 〈피시 탱크〉는 한 소녀의 감정 서사가 아니라, 제한된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고 변형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 기록이다. 이 글은 이 영화를 양자역학, 수산학, 공학이라는 세 가지 이질적인 학문적 관점으로 읽어내며, 영화가 어떻게 현대 사회의 구조적 현실을 과학적 은유로 포착하고 있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양자역학적 해석: 관측될 때 달라지는 소녀의 상태

〈피시 탱크〉에서 미아는 결코 고정된 인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와 타인의 시선 속에 있을 때 완전히 다른 상태를 보인다. 이는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중첩 상태와 매우 유사하다. 미아는 분노와 취약함, 공격성과 순수함이 동시에 존재하는 상태로 살아가며, 특정 사건이나 인물과의 접촉, 즉 ‘관측’이 이루어질 때마다 한 가지 상태로 급격히 붕괴된다. 코너와의 관계는 이러한 상태 붕괴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미아에게 가능성의 파동처럼 다가오며, 그녀의 삶에 새로운 경로가 존재할 수 있다는 착각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그 가능성은 안정된 궤도로 전이되지 못하고, 외부 조건이 변하자 즉시 사라진다. 이는 양자 세계에서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으면 입자가 새로운 상태로 전이하지 못하는 현상과 닮아 있다. 미아의 세계에는 선택지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확률 분포만 존재한다. 영화는 자유 의지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그 자유가 얼마나 미세한 조건 변화에 의해 제한되는지를 보여준다. 미아는 실패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허용되지 않은 상태로 이동하려 했을 뿐이다. 이 양자역학적 시선은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의 행동을 도덕이 아닌 구조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수산학적 은유: 관리되는 생명, 탈출 불가능한 어장

〈피시 탱크〉라는 제목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관리되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사육된 생명’에 가깝다. 현대 수산업에서 양식장은 효율과 통제를 위해 생물의 이동, 먹이, 성장 속도를 철저히 관리한다. 영화 속 주거 단지 역시 이와 유사한 논리로 작동한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이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이라는 그물망 안에서 순환한다. 미아의 분노는 반항처럼 보이지만, 이는 좁은 수조 안에서 반복적으로 벽에 부딪히는 물고기의 움직임과 다르지 않다. 그녀가 꿈꾸는 ‘밖’의 세계는 존재하지만, 그곳으로 이어지는 통로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다. 수산학적으로 볼 때, 과밀 상태의 양식장은 공격성과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이는 개체의 비정상적 행동으로 이어진다. 영화 속 폭력과 충돌은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만들어낸 반응이다. 특히 여성과 아이들이 감정 노동과 돌봄의 자원으로 소비되는 구조는, 특정 종만 선택적으로 길러내는 수산 자원 관리 방식과 겹쳐진다. 이 영화는 인간을 물고기에 비유함으로써 비인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이 자원처럼 관리되고 있음을 드러낸다. 〈피시 탱크〉는 감정의 이야기이기 이전에, 생존 구조에 대한 냉정한 생태 보고서다.

 

 

공학적 시선: 실패하도록 설계된 시스템

영화 속 공간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고층 아파트, 폐쇄된 계단, 단절된 도로와 CCTV가 암시하는 감시 구조는 명백히 공학적 설계의 산물이다. 이 공간들은 안전과 효율을 명분으로 설계되었지만, 실제로는 인간의 이동과 선택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공학에서 잘못된 시스템은 고장이 아니라 ‘의도된 결과’를 낳는다. 〈피시 탱크〉의 사회 시스템 역시 마찬가지다. 미아가 학교, 가정, 지역 사회 어디에서도 안정된 피드백을 얻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피드백 회로가 단절된 구조적 결함 때문이다. 제어 공학적으로 보면 이는 오픈 루프 시스템에 가깝다. 입력은 존재하지만, 출력이 다시 조정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미아의 분노와 행동은 계속 출력되지만, 그에 대한 사회적 조정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시스템은 불안정 상태를 유지하며, 개별 구성원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이 영화는 폭력이나 방임을 감정적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이 어떤 설계 실패에서 비롯되었는지를 보여준다. 공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피시 탱크〉는 인간을 고려하지 않은 설계가 어떤 삶의 파편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사례 연구다. 이 시스템에서 탈출은 혁명이 아니라, 우연에 가깝다. 〈피시 탱크〉는 성장 영화라는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 본질은 과학적이다. 양자역학적으로는 상태와 가능성의 문제를, 수산학적으로는 관리되는 생명의 구조를, 공학적으로는 실패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을 보여준다. 미아는 구원받지 않지만, 그녀의 이야기는 설명된다. 이 영화는 감정을 자극하는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얼마나 많은 선택지를 허용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은 실제로 이동 가능한 상태인가. 〈피시 탱크〉는 좁은 수조 안에서 요동치는 한 존재를 통해, 현대 사회 전체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그것은 비극이 아니라, 기록이다. 그리고 이 기록은 조용하지만 오래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