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겔 고메스 감독의 영화 타부(Tabú)는 단순한 멜로드라마나 식민지 회고 영화로 분류되기에는 지나치게 복합적인 층위를 지닌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랑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유럽의 기억, 침묵된 역사, 그리고 문화적 자기기만에 대한 성찰로 기능한다. 흑백 화면, 무성영화에 가까운 후반부의 서사 방식, 그리고 두 개의 장으로 나뉜 구조는 관객에게 단순한 감정 이입이 아니라 ‘기억을 읽는 행위’를 요구한다. 특히 영화가 전개되는 포르투갈과 아프리카 식민지의 대비는 문화적 정체성, 철학적 시간 인식, 그리고 역사 서술의 윤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타부〉**는 과거를 재현하지 않는다. 대신 과거가 어떻게 말해지고, 어떻게 미화되며, 어떻게 지워지는지를 보여준다. 이 글에서는 **〈타부〉**를 문화, 철학, 역사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함으로써, 이 영화가 왜 ‘아름다운 흑백 영화’라는 수식어를 넘어, 유럽 근현대사의 기억 장치로 기능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식민지의 풍경과 유럽적 감수성: 문화로 읽는 〈타부〉
〈타부〉의 가장 인상적인 지점 중 하나는 문화적 시선의 방향성이다. 영화는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삼지만, 아프리카인의 목소리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자연, 음악, 파티, 사냥, 연애라는 이미지들이 유럽인의 시선으로 배열된다. 이는 의도적인 결핍이며, 바로 그 결핍이 이 영화의 문화적 비판성을 구성한다. 식민지는 문화적 타자로 소비되며, 낭만과 야만이 동시에 투사되는 공간으로 재현된다. 전통 음악과 서구적 멜로디가 뒤섞인 사운드는 문화 혼종성을 암시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권력의 비대칭 속에서 구성된 미학이다. 감독은 이 불균형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노출시킨다. 후반부에서 대사가 사라지고 내레이션만 남는 방식은, 말할 수 있는 자와 말할 수 없는 자의 경계를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문화는 여기서 교류가 아니라 편집의 결과다. **〈타부〉**는 식민지 문화를 향한 향수조차도 하나의 문화적 폭력일 수 있음을 조용히 암시하며, 유럽 예술 영화가 지녀온 자기중심적 감수성을 스스로 해체한다.
시간과 기억의 철학: 말해지는 과거와 말해지지 않는 진실
타부는 철학적으로 매우 독특한 시간관을 제시한다. 영화는 현재에서 과거로 이동하지만, 그 과거는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한 인물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한다. 이는 시간의 선형성을 부정하고, 기억이 곧 세계를 구성한다는 현상학적 관점을 떠올리게 한다. 후반부의 아프리카 이야기는 아름답고 순수한 사랑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 아름다움이 의심의 대상이 된다. 기억은 언제나 선택적이며, 죄책감과 욕망에 의해 재구성된다. 이 영화에서 사랑은 진실일 수도 있지만, 동시에 자기 변명의 언어일 수도 있다. 말이 사라진 영화의 후반부는 철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언어는 세계를 설명하지만, 동시에 세계를 왜곡한다. 침묵 속에서 흐르는 이미지들은 설명되지 않기에 더욱 불안하고, 관객은 스스로 의미를 구성해야 한다. **〈타부〉**는 진실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누가 기억하는가”, “어떤 방식으로 말해지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역사와 개인 서사의 철학적 불완전성을 드러낸다.
침묵의 역사, 낭만화된 폭력: 역사적 사학과 윤리
〈타부〉는 포르투갈의 식민지 역사를 정면으로 고발하지 않는다. 대신 그 역사가 어떻게 낭만적으로 소비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사냥, 파티, 사랑, 음악으로 가득 찬 식민지의 일상은 표면적으로는 평화롭지만, 그 이면에는 구조적 폭력과 착취가 전제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이는 유럽 식민 서사의 전형적인 문제다. 폭력은 배경으로 밀려나고, 개인의 감정과 모험담이 중심이 된다. 영화 속 아프리카는 역사적 주체가 아니라 무대 장치처럼 기능한다. 바로 이 점에서 **〈타부〉**는 비판적이다. 감독은 과거를 미화하지 않기 위해, 오히려 그 미화의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다. 관객은 아름다운 이미지에 매혹되지만, 동시에 그 아름다움이 무엇을 가리고 있는지 자문하게 된다. 역사는 여기서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선택과 침묵의 결과물이다. **〈타부〉**는 유럽 근현대사가 어떻게 자기 자신을 이야기해왔는지를 되묻는 영화이며, 그 질문은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타부〉는 느리고 조용한 영화지만, 그 사유의 밀도는 매우 높다. 문화는 권력과 함께 형성되고, 철학은 기억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며, 역사는 언제나 말해지지 않은 타자의 침묵 위에 세워진다. 이 영화는 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이, **〈타부〉**를 단순한 예술 영화가 아니라, 기억과 책임에 대한 깊은 성찰의 공간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