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투자와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만 여겨지는 경향이 강합니다. 하지만 코고나다 감독의 영화 <콜럼버스>는 건축과 공간이 지닌 본질적 가치를 성찰하게 만듭니다. 이 영화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소도시 콜럼버스를 배경으로, 모더니즘 건축을 통해 공간의 공공성과 일상 속 경이로움, 그리고 형이상학적 의미를 탐구합니다.
영혼이 담긴 모더니즘, 부동산의 공공성
영화 <콜럼버스>가 제시하는 가장 중요한 가치는 부동산과 건축의 공공성입니다. 콜럼버스는 미국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알려진 지방 소도시로, 이곳에는 기념비적 규모의 과시적 건축물이 아니라 병원, 교회, 학교, 은행, 도서관 등 일상적 공공건물들이 즐비합니다. 영화 속 케이시(헤일리 루 리처드슨)와 진(존 조)은 이러한 건축물들을 매개로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며 관계를 이어갑니다. 영화는 서사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 장면들을 통해 공간의 공공성을 강조합니다. 청소부들, 병원 노무원들, 공장 노동자들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화면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이들이 그 공간을 실제로 구성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진의 아버지가 평생 탐구했던 '영혼이 담긴 모더니즘'은 바로 이것입니다. 대부호의 사적 공간에서 벗어나 공공의 일상적 삶에서 공유할 수 있는 공동체의 경험으로서의 건축입니다. 2025년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은 원화 가치 하락과 맞물려 투자 수단으로만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영화가 제시하는 것처럼, 부동산의 진정한 가치는 그 공간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에 의미 있게 기여하는가에 있습니다. 영화 속 밀러 주택의 소유자이자 콜럼버스 모더니즘 건축의 후원자였던 어윈 밀러는 에큐메니즘주의자이자 시민권 운동가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부를 사적으로 과시하는 대신 공공건축을 후원하며 지역사회 전체에 기여했습니다. 이는 부동산이 단순한 경제적 가치를 넘어 사회적 책임과 공동체 가치를 실현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평범함은 값비싸다, 일상 속 경이로움의 발견
"평범함은 값비싸다." 영화 오프닝에 등장하는 어윈 밀러의 이 말은 <콜럼버스>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 코고나다는 로베르 브레송, 잉마르 베리만, 오즈 야스지로 등 고전영화 거장들의 미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며, 카메라 워킹을 거의 활용하지 않은 정적인 화면과 밋밋한 서사구조 속에서 일상의 진귀한 아름다움을 포착합니다. 영화는 밀러 주택과 케이시의 집을 여러 번 대칭적으로 보여줍니다.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밀러 주택은 호사스럽고 아름다운 소품들로 가득하지만, 영화는 케이시의 평범한 서민 주택을 비추는 데도 똑같은 공을 들입니다. 밀러 주택 거실의 진귀한 유리 공예품들과 케이시 집 거실의 값싼 유리 공예품들은 크기와 질에서 비교할 수 없지만, 감독은 두 공간 모두에서 사람의 삶과 취향, 삶의 깊이가 각인되어 있음을 발견합니다. 카메라는 케이시의 집 내부를 특정한 방향에서만 움직임 없이 비추며, 전체 구조를 한눈에 보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적인 공간의 등장 속에서 묘하게도 묵상적이고 고요한 깊이감이 만들어집니다. 무심한 듯 두 차례 등장하는 좁은 뒷골목, 별다를 것 없는 거리 아이들의 대화와 놀이 등 영화 속 부수적 장면들은 일상적 삶의 경이로움을 전합니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평수, 브랜드, 가격으로만 평가받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가 보여주는 것처럼, 공간의 진정한 가치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감정, 그리고 일상의 순간들에 있습니다. 깨닫기만 한다면 이 아름다움과 경이는 우리의 일상 속으로 잠입해올 수 있습니다. 케이시가 괴로울 때 자신이 좋아하는 건축물 앞에서 마음을 정돈하듯이, 우리 주변의 공간들도 우리에게 위안과 성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외팔보 구조와 형이상학적 열망, 부동산의 정신적 가치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진이 찾아다니던 아버지의 메모 속 건물은 시청 건물이었습니다. 근접하지만 만나지 않는 외팔보 형식의 구조물은 어떠한 형이상학적 열망을 상징합니다. 진의 아버지는 건축비평가로서 평생 '영혼이 담긴 모더니즘'을 탐구했고,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은 부호의 살롱이 아니라 시청, 광장, 병원, 학교였습니다. 영화는 정주와 이동, 과거와 미래, 주저함과 결단 사이에서 동요하고 성찰하며 조응하는 두 인물을 따라갑니다. 케이시는 경제적 어려움과 회복 중인 중독자 어머니 부양에 대한 의무감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콜럼버스에 머물러 있습니다. 진은 정서적 관계를 맺지 않았던 아버지를 원망하며 서울에서의 삶으로 돌아가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건축과 공간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탐험하며, 의무와 전통, 책임감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됩니다. 감독은 고안된 대칭 구도를 활용하면서도 완전무결한 기하학적 엄격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씩의 변주와 초점의 변화를 둡니다. 케이시와 진의 대화는 대부분 커트 없이 한 장면에 담기며, 특히 리처드슨의 자연스럽고 속 깊은 연기는 대사로는 전달될 수 없는 감정을 미세한 움직임과 시선의 변화로 표현합니다. 거울을 활용한 장면들, 특히 진과 엘리노어(파커 포시)의 대화 신은 과거와 현재, 욕망과 거리두기를 동시에 보여주며 형이상학적 깊이를 더합니다. 대한민국의 부동산 담론에서 정신적, 철학적 가치는 거의 논의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콜럼버스>는 공간이 단순히 물리적 구조물이 아니라 우리의 감정, 기억, 정체성과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외팔보 구조처럼 근접하지만 만나지 않는 형태는 인간의 관계와 욕망, 그리고 초월에 대한 열망을 상징합니다. 부동산은 이러한 형이상학적 의미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습니다. 영화 <콜럼버스>는 2025년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이 잃어버린 가치들을 상기시킵니다. 공공성, 일상 속 경이로움, 형이상학적 의미라는 세 가지 관점은 부동산을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닌, 우리 삶의 질과 공동체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매개체로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정적이고 묵상적인 이 영화가 전하는 "평범함은 값비싸다"는 메시지는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통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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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씨네21 영화비평: https://cine21.com/news/view/?mag_id=900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