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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다 속 예술, 철학, 법학

by inf3222 2026. 1. 2.

영화 이다 속 예술, 철학, 법학
영화 이다 속 예술, 철학, 법학

 

파벨 파블리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이다(Ida)〉*는 극도로 절제된 형식과 침묵에 가까운 서사로 관객을 맞이한다. 흑백 화면, 4:3의 비정형적인 화면비, 그리고 인물의 얼굴보다 빈 공간을 더 많이 담아내는 구도는 이 영화가 감정을 설명하기보다 사유를 요구하는 작품임을 처음부터 분명히 한다. *〈이다〉*는 한 젊은 수녀가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 시작되지만, 영화의 관심은 개인적 성장담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예술적으로는 이미지와 여백의 의미를 재정의하고, 철학적으로는 신앙과 선택, 침묵과 자유를 사유하며, 법의 관점에서는 전후 폴란드 사회가 남긴 책임과 정의의 문제를 조용히 호출한다. 이 영화에서 과거는 회상되지 않고, 현재 속에 무겁게 남아 있다. 관객은 등장인물과 함께 질문을 던지게 된다. “알게 된 진실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은 *〈이다〉*를 예술, 철학, 법이라는 세 가지 관점에서 분석하며, 이 영화가 왜 말수가 적음에도 불구하고 깊은 윤리적 울림을 남기는지를 탐구하고자 한다.

 

 

예술적 관점: 여백과 침묵이 만들어내는 시각적 윤리

*〈이다〉*의 예술성은 화려함이 아니라 절제에서 비롯된다. 이 영화의 미장센은 인물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오히려 화면의 위쪽이나 주변에 비워진 공간을 통해 인물의 존재가 얼마나 작은지, 그리고 세계가 얼마나 무심한지를 강조한다. 이러한 구도는 단순한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윤리처럼 작동한다. 관객은 인물의 내면으로 쉽게 침투할 수 없으며, 감정을 대신 느껴주도록 강요받지 않는다. 흑백 화면은 과거를 재현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판단을 유보하는 시선에 가깝다. 색채가 제거된 세계에서 선과 악, 가해와 피해의 구분은 명확하지 않게 흔들린다. 카메라는 설명하지 않고 관찰하며, 음악은 감정을 조작하지 않는다. 이러한 예술적 선택은 관객으로 하여금 화면을 소비하는 대신,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만든다. *〈이다〉*는 예술이 감정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윤리적 거리감을 형성하는 매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미학은 장식이 아니라, 책임 있는 시선의 형식이다.

 

 

철학적 관점: 신앙, 선택, 그리고 침묵의 자유

철학적으로 *〈이다〉*는 신앙과 자유의 관계를 단순하게 다루지 않는다. 이다는 수녀가 되기 위한 서약을 앞두고 자신의 유대인 정체성과 가족의 비극적 과거를 알게 된다. 그러나 영화는 그녀의 신앙을 순진한 믿음이나 도피로 묘사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앙은 선택 이전의 상태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도 감당해야 할 태도로 제시된다. 이다는 세속의 삶을 경험할 기회를 얻지만, 그 경험은 해방이라기보다 질문의 연속이다. 자유는 무엇을 더 많이 누릴 수 있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전환된다. 철학적으로 이 영화는 사르트르적 실존주의와도 닿아 있다. 진실을 알게 된 이후, 선택하지 않을 수 있는 길은 없다. 이다는 말이 적지만, 침묵은 무지가 아니라 사유의 형식이다. 영화는 결말에서 이다의 선택을 명확히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자유의 의미를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이다〉*는 신앙을 답으로 제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신앙조차 질문 속에 놓는다. 이 작품에서 철학은 선언이 아니라, 끝내 해소되지 않는 태도의 문제로 남는다.

 

 

법학적 관점: 역사적 책임과 정의의 부재

법학의 관점에서 *〈이다〉*는 전후 사회가 안고 있는 정의의 공백을 조용히 드러낸다. 이다의 가족은 홀로코스트와 그 이후의 폭력 속에서 살해되었지만, 그 가해는 법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과거의 범죄는 공식적인 재판이나 법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고, 개인적 기억과 양심의 영역에 머문다. 이는 전후 동유럽 사회가 겪었던 구조적 문제를 반영한다. 법은 존재하지만, 정의는 완결되지 않는다. 완다는 국가 권력의 일원으로서 과거에 판사로 활동했지만, 그녀 역시 개인적 죄책감과 역사적 책임 사이에서 파열된 인물이다. *〈이다〉*는 법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환상을 거부한다. 정의는 제도 속에 완전히 흡수되지 않으며, 남겨진 이들은 진실을 알고도 그것을 바로잡을 수 없는 상태에 놓인다. 이 영화는 복수를 요구하지 않고, 용서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만 법이 다루지 못한 영역이 어떻게 개인의 삶에 잔존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다〉*에서 법은 부재하는 정의의 증거이며, 침묵은 그 공백을 메우지 못한 역사 자체다. *〈이다〉*는 크지 않은 이야기로 매우 큰 질문을 던지는 영화다. 예술적으로는 절제를 통해 윤리적 시선을 형성하고, 철학적으로는 선택과 자유의 무게를 사유하게 하며, 법의 관점에서는 역사적 책임이 남긴 상처를 드러낸다. 이 영화가 강렬한 이유는 비극을 확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비극을 일상 속에 남겨둠으로써, 관객이 쉽게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이다〉*는 답을 주지 않는 영화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래 지속되는 질문을 남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우리 각자의 윤리와 기억 속에서 계속해서 되풀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