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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언더 더 스킨 정치학, 철학, 사학

by inf3222 2026. 1. 4.

영화 언더 더 스킨 정치학, 철학, 사학
영화 언더 더 스킨 정치학, 철학, 사학

 

영화 **〈언더 더 스킨(Under the Skin)〉**은 외계 생명체라는 설정을 차용하지만, 그 목적은 공상과학적 세계관을 확장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영화는 인간 사회를 가장 낯선 거리에서 바라보게 만드는 하나의 정치적·철학적 장치에 가깝다. 이름도 과거도 없는 존재가 인간의 피부를 입고 도시를 배회하는 이 영화의 설정은, 인간 사회가 당연하게 여겨온 규범과 권력, 역사적 습관을 철저히 해체한다. 영화는 설명을 거부하고, 서사를 최소화하며, 관객을 불편한 침묵 속에 놓는다. 그 침묵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 사회가 스스로를 어떻게 조직해왔는지에 대한 냉정한 관찰이다. 〈언더 더 스킨〉은 정치적 메시지를 직접적으로 외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영화가 보여주는 거리, 노동, 남성성, 여성의 몸은 모두 정치적 맥락을 내포한다. 특히 외계 존재의 시선은 인간 사회의 권력 관계를 드러내는 거울처럼 기능한다. 인간은 이방인을 두려워하면서도 동시에 착취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척하면서도 방관한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도덕성 이전에, 오랜 역사 속에서 축적된 사회 구조의 결과다. 이 영화는 바로 그 구조를 피부 아래까지 파고들어 해부한다.

 

 

정치적 시선으로 본 타자와 착취의 구조

〈언더 더 스킨〉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정치적 요소는 타자를 대하는 사회의 태도다. 주인공은 인간 사회에 완전히 소속되지 않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여성의 몸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특정한 방식으로 소비된다. 영화 속 남성들은 그녀를 욕망의 대상으로만 인식하며, 그녀의 침묵이나 무표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는 개인의 성적 충동을 넘어, 여성의 몸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대상화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이 영화의 정치성은 국가나 제도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하다. 거리에서 만나는 노동자, 이주민, 사회적 약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보호받지 못한다. 특히 해변에서 벌어지는 사건은 극단적인 정치적 은유로 읽힌다. 생존의 위기 속에서 누군가는 방치되고, 누군가는 외면당하며, 누군가는 구조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장면은 복지와 연대라는 말 뒤에 숨겨진 현실의 냉혹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외계 존재는 처음에는 착취의 주체처럼 보이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녀 또한 구조의 일부임이 드러난다. 이는 권력이 단순히 개인에게 귀속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에 분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란 명령과 복종의 관계가 아니라, 누가 보이고 누가 보이지 않는지를 결정하는 시선의 문제임을 영화는 묵묵히 증명한다.

 

 

인간됨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질문

〈언더 더 스킨〉의 철학적 핵심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있다. 이 영화에서 인간성은 언어나 도덕, 이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는 방식, 그리고 세계와 관계를 맺는 감각을 통해 드러난다. 외계 존재는 처음에는 인간을 기능적으로만 인식한다. 그들은 포획의 대상이며, 자원에 불과하다. 그러나 점차 그녀는 인간 세계의 감각을 경험하며,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혼란과 불안을 체득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전통적인 인간 중심주의를 철저히 해체한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가 아니라, 상황에 따라 잔혹해질 수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 묘사된다. 반대로 외계 존재는 점점 인간적인 고통과 공포를 느끼며, 윤리적 주체로 변화한다. 이는 인간성과 비인간성의 경계가 얼마나 취약한지를 보여주는 철학적 장면이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이 질문을 극단으로 밀어붙인다. 인간 사회에서 보호받아야 할 존재가 오히려 가장 큰 위협에 노출되는 순간, 영화는 묻는다. 인간 사회는 과연 인간적인가. 철학적으로 볼 때, 〈언더 더 스킨〉은 인간됨을 본질이 아니라 과정으로 제시한다. 인간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 속에서 형성되며, 그 과정은 언제든 붕괴될 수 있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읽는 소외와 근대성의 잔재

이 영화는 특정 시대를 명시하지 않지만, 그 배경에는 분명한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산업화 이후의 도시, 파편화된 공동체, 익명화된 인간 관계는 근대 이후 사회가 만들어낸 풍경이다. 〈언더 더 스킨〉의 스코틀랜드 도시는 역사적 기억이 제거된 공간처럼 보이며, 사람들은 서로를 인식하지 않은 채 스쳐 지나간다. 이는 근대 이후 개인이 어떻게 고립되어 왔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장면이다. 특히 영화 속 남성 인물들은 노동 계급의 잔재처럼 묘사된다. 그들은 반복적인 노동 속에서 소진되어 있으며, 자신의 욕망과 좌절을 언어화하지 못한다. 이러한 모습은 산업사회 이후 남성성이 어떻게 변화하고 붕괴해왔는지를 상징한다. 외계 존재는 이들의 삶에 잠시 스며들지만, 그 관계는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 이는 근대 사회가 만들어낸 인간 관계의 일회성과 소모성을 드러낸다. 역사적으로 볼 때, 〈언더 더 스킨〉은 진보의 서사를 거부한다. 기술과 문명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여전히 타자를 배제하고 폭력을 반복한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직접 연결하지 않지만, 근대 이후 축적된 소외의 역사가 여전히 현재를 지배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작품은 역사적 성찰을 통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보다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를 묻는다. 〈언더 더 스킨〉은 설명하지 않고, 판단하지 않으며, 위로하지도 않는다. 대신 정치, 철학, 역사의 층위를 겹겹이 쌓아 올려 관객을 낯선 시선 속에 놓는다.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외계 생명체가 등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인간 사회의 모습이 그 속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피부 아래에 숨겨진 것은 괴물이 아니라, 우리가 외면해온 세계의 구조다. 그리고 그 구조를 직시하는 순간, 영화는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오래도록 사유를 멈추지 않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