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액트 오브 킬링(The Act of Killing)은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질문하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1960년대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진 대규모 학살의 가해자들을 현재 시점으로 불러내, 그들 스스로가 과거의 살인을 “재연”하도록 만든다. 피해자의 증언이나 역사적 기록을 중심에 두는 대신, 가해자의 얼굴과 목소리, 그리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기괴한 연극적 장면을 전면에 배치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시작부터 관객을 불편하게 만든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야말로 영화가 노리는 핵심 감정이다. 액트 오브 킬링은 단순히 과거의 비극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이 어떻게 미화되고 일상화되며, 사회적 기억 속에서 왜곡되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이 영화의 분위기, 등장인물, 그리고 서사는 전통적인 다큐멘터리의 문법을 해체하면서도, 오히려 그 어떤 극영화보다 강렬한 현실감을 남긴다. 이 글에서는 〈액트 오브 킬링〉의 전체적인 분위기, 인물들이 보여주는 복합적인 얼굴, 그리고 영화가 만들어내는 독특한 플롯 구조를 중심으로 작품을 깊이 있게 살펴보고자 한다.
영화의 분위기: 초현실과 현실이 충돌하는 불안한 공기
액트 오브 킬링의 가장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는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기묘한 분위기다. 이 작품은 차분하고 객관적인 다큐멘터리의 톤을 의도적으로 거부한다. 대신 화려한 의상, 과장된 세트, 뮤지컬과 갱스터 영화의 문법을 차용한 장면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러한 연출은 처음에는 우스꽝스럽고 비현실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관객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감을 남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화려한 이미지들이 실제 대량 학살의 기억 위에 세워져 있기 때문이다. 웃음과 폭력, 향수와 잔혹함이 한 프레임 안에서 공존할 때, 영화의 공기는 점점 숨 막히게 변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단순히 어둡거나 무겁다고 말하기 어렵다. 오히려 밝고 경쾌한 순간들이 많기 때문에 더욱 섬뜩하다. 가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과거를 자랑스럽게 회상하고, 살인을 “창의적인 작업”처럼 묘사한다. 이러한 태도는 관객의 도덕적 기준을 끊임없이 흔들며, 현실과 연출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 〈액트 오브 킬링〉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공포 영화의 긴장과는 다르다. 그것은 인간이 자신의 폭력을 어떻게 합리화하고 미화하는지를 목격할 때 느끼는 깊은 불쾌감, 그리고 그 불쾌감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자각에서 비롯된다.
등장인물 분석: 가해자의 얼굴로 드러나는 인간의 모순
이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주인공”과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영웅도, 반성하는 죄인도 아니다. 〈액트 오브 킬링〉은 인도네시아 학살의 가해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며, 그들의 말과 행동을 거의 그대로 보여준다. 특히 중심 인물로 등장하는 안와르 콩고는 영화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다큐멘터리 인물 중 하나로 남는다. 그는 과거 수백 명을 قتل한 사실을 숨기지 않으며, 오히려 영화 촬영을 즐기듯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이 모습은 관객에게 분노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이해할 수 없는 인간 심리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흥미로운 점은 영화가 이 인물들을 단순한 괴물로 묘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가족을 사랑하고, 친구들과 웃으며, 자신만의 윤리적 논리를 가지고 살아간다. 바로 이 지점에서 영화는 가장 날카로운 통찰을 드러낸다. 극단적인 폭력은 특별한 악인이 아니라, 평범한 얼굴을 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가해자들이 연출하는 재연 장면 속에서, 그들은 감독이자 배우이며 동시에 관객이 된다. 이 자기 연출의 과정은 그들의 내면을 조금씩 드러내며, 후반부로 갈수록 미세한 균열과 불안이 감지된다. 〈액트 오브 킬링〉의 인물들은 반성의 서사를 제공하지 않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관객은 더 깊은 윤리적 고민에 빠지게 된다.
플롯과 서사 구조: 재연을 통해 해체되는 역사적 기억
액트 오브 킬링의 플롯은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를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명확한 사건의 전개보다는, 가해자들이 과거를 재현하는 과정을 따라간다. 이 재연은 단순한 회상이 아니라, 영화 속 영화이자 공연이며, 일종의 심리 실험에 가깝다. 가해자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 장르를 선택해 학살 장면을 연출하고, 그 결과물을 스스로 감상한다. 이 반복적인 구조 속에서 관객은 점차 중요한 변화를 목격하게 된다. 재연이 거듭될수록 폭력은 점점 구체적인 감각을 되찾고, 말로 포장되던 살인의 기억은 몸의 기억으로 돌아온다. 이러한 플롯은 역사 서술의 방식 자체를 문제 삼는다. 공식 기록과 국가 권력이 만들어낸 서사 속에서 영웅으로 남아 있던 가해자들은,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의 이야기를 반복하며 결국 균열을 드러낸다. 영화의 후반부에서 나타나는 미묘한 침묵과 신체 반응은, 어떤 설명보다 강력한 서사적 장치로 작용한다. 〈액트 오브 킬링〉은 사건을 “해결”하지도,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도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폭력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 기억은 누구의 목소리로 구성되어 있는가. 이 영화의 플롯은 답을 주기보다는, 관객 스스로 그 불편한 질문을 끝까지 붙잡도록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