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는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 아니라, 인간 내면과 사회 구조를 비추는 심리적 거울이다. 오슨 웰스의 **〈시민 케인(Citizen Kane)〉**과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Nader and Simin, A Separation)〉**는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권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선택과 그로 인한 균열을 집요하게 파고든다는 점에서 깊은 공통점을 지닌다. 전자는 자본과 권력의 정점에 선 한 남자의 고독한 내면을 추적하고, 후자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이혼이라는 일상적 사건을 통해 도덕과 책임의 복잡한 심리를 해부한다. 이 두 작품은 영화사적으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며, 감독의 세계관과 인간 심리에 대한 통찰이 밀도 높게 응축된 텍스트로 읽힌다. 본 글에서는 시민 케인과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를 중심으로 영화의 의미, 감독의 연출 의도, 그리고 등장인물들의 심리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왜 이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반복해서 해석되고 논의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시민 케인의 의미와 오슨 웰스의 시선
시민 케인〉은 흔히 “영화사상 최고의 영화”라는 수식어로 요약되지만, 그 명성의 핵심에는 단순한 기술적 혁신을 넘어선 인간 탐구가 자리하고 있다. 오슨 웰스는 신문 재벌 찰스 포스터 케인의 삶을 파편화된 서사로 제시하며, 한 인간을 규정하려는 모든 시도의 불완전함을 드러낸다. 영화의 중심 질문인 ‘로즈버드’는 케인의 어린 시절과 상실된 순수함을 상징하지만, 동시에 인간의 삶이 하나의 단어로 환원될 수 없다는 역설을 내포한다. 권력을 쥔 이후에도 끊임없이 사랑과 인정을 갈망하는 케인의 모습은, 물질적 성공이 심리적 충만함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준다. 오슨 웰스는 딥 포커스 촬영과 비선형 편집을 통해 케인의 심리를 객관적으로 해부하는 동시에, 관객이 그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도록 의도적으로 거리를 유지한다. 이로써 〈시민 케인〉은 한 개인의 전기 영화가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 권력과 고독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묻는 철학적 텍스트로 확장된다.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와 아스가르 파르하디의 현실 윤리
아스가르 파르하디 감독의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는 거대한 사건이나 극적인 반전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다. 대신 일상의 선택들이 어떻게 연쇄적인 갈등과 오해를 낳는지를 정교하게 묘사하며, 관객을 도덕적 판단의 미로로 끌어들인다. 영화의 출발점은 단순한 부부의 이혼이지만, 노부모 부양, 계급 차이, 종교적 신념이라는 요소들이 얽히며 이야기는 점점 복잡해진다. 파르하디는 어느 한 인물도 절대적인 가해자나 피해자로 규정하지 않고, 각자의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 가능한 동기를 부여한다. 이러한 연출 방식은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입장을 수정하게 만들며, 진실이란 단일하지 않다는 사실을 체감하게 한다. 특히 이 영화가 주는 의미는 이란 사회라는 특정한 배경을 넘어, 보편적인 인간 관계의 윤리적 딜레마를 건드린다는 데 있다. 파르하디의 카메라는 판단하지 않고 관찰하며, 그 결과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는 현실과 거의 동일한 무게감의 심리 드라마로 완성된다.
두 영화에 드러난 인간 심리의 공통점과 대비
<시민 케인〉과 〈나데르와 심인의 별거〉는 표면적으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인간 심리를 바라보는 방식에서는 놀라운 접점을 형성한다. 두 작품 모두 인물들이 자신의 선택을 정당화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얼마나 쉽게 속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케인은 사랑을 소유하려 했고, 나데르와 심인은 각자의 ‘옳음’을 지키려다 관계를 파괴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오슨 웰스는 한 인물의 내면을 거대한 서사와 상징으로 확대하는 반면, 파르하디는 미세한 표정과 침묵 속에서 심리의 균열을 포착한다는 점이다. 전자가 권력의 고독을 통해 인간 욕망의 근원을 탐구한다면, 후자는 도덕적 선택의 누적이 어떻게 삶을 뒤틀어 놓는지를 보여준다. 이 두 영화는 결국 인간이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를 인정하게 만든다. 완벽한 이해도, 완전한 정의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우리는 각자의 입장과 심리를 안고 살아간다. 이러한 통찰이야말로 두 작품이 시대와 국경을 넘어 계속해서 재조명되는 이유이며, 영화가 인간을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 중 하나임을 증명하는 지점이다.